[뉴스의 맥] 일자리안정자금, 졸속 입안에 따른 예고된 부진

입력 2018-02-06 18:09  

올 지원목표 300만 명인데 5일 현재 신청인원 20만 명뿐
월 13만원 지원받기 위해 사회보험료 20만원 부담 더 커
고용부 장관, 최저임금 근본 대책 없이 홍보 부족 탓만

최종석 < 노동전문위원 >



실효성 의문시되는 일자리안정자금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사업주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한 ‘일자리안정자금’이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에게 외면받고 있다. 올해 목표는 300만 명인데 올해 첫 급여를 지급한 1월을 넘긴 지난 5일 현재 신청인원은 20만 명 선이다. 목표 대비 신청률이 6.8%에 불과하다. 정부는 신청이 저조한 이유로 홍보 부족을 꼽는 듯하다. 정부 부처는 물론 청와대 참모진이 총동원돼 홍보전을 펴고 있으니 말이다. 정부는 사회보험료 지원, 지급 요건 완화 등 보완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노동시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최저임금을 올려놓은 이후 졸속으로 마련한 일자리안정자금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연일 현장을 누비고 있다. 홍보대사로 개그맨을 임명하고 신청을 독려하고 있다. 고용부 일선 기관인 지방노동청에서는 근로감독관, 직업상담원 등이 모두 일자리안정자금 신청서를 받는 데 매달려 있다. 직원 1인당 사업장 30~40개씩 할당량이 주어졌다. 신청서 실적을 연말 기관평가에 반영하겠다는 방침이어서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다. 김 장관은 최근 지방노동관서장 회의에서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실적이 부진한 지방청장을 강하게 질책했다는 후문까지 들린다. 홍보전에는 고용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은 물론 기획재정부 중소벤처기업부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등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영세 소상공인과 근로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이처럼 신청이 부진한 걸까. 현장 목소리는 다르다. 근로자 한 명당 월 13만원의 지원금을 받으려면 4대 사회보험 가입이 필수다. 사업주가 부담하는 보험료율은 고용보험 0.9%, 국민연금 1.45%, 건강보험 3.35%다. 산재보험은 업종, 사업장마다 다르지만 평균 1.8%다. 근로자 1인당 월 190만원을 주는 사업주는 20만원가량 사회보험료를 내야 한다. 근로자도 산재보험료를 제외한 고용보험, 국민연금, 건강보험 부담이 16만원가량 늘어난다. 근로자들이 4대 사회보험 가입을 꺼리는 이유다.


근로자도 사회보험료 부담 기피

다른 통계도 사회보험 가입 기피 현상을 보여준다. 10명 미만 사업장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2016년 기준으로 54.3%에 불과하다. 저소득 근로자의 사회보험 가입을 지원하는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사업’ 실적도 2016년 기준으로 고용보험은 70만 명, 국민연금은 91만 명 지원에 그쳤다. 이런 실정인데도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목표를 300만 명으로 설정한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7월 최저임금위원회가 2018년 최저임금을 한꺼번에 16.4%나 올리기로 결정한 직후 정부는 서둘러 보완책을 내놨다. 3조원의 예산을 들여 영세 사업주를 지원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세부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지원 대상이 월보수 190만원 미만 근로자로 정해졌다. 월급 기준 최저임금 157만3770원의 120% 수준이라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도 각종 수당을 더하면 실제 보수액은 190만원을 웃도는 경우가 많다. 지원 대상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설정해 놓고는 목표 인원은 부풀려 놨으니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사업은 신청 자체가 저조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왔다. 지난 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소득세법 개정안에서 보완책이 나왔다. 일자리안정자금은 비과세 소득을 제외한 과세소득을 기준으로 월보수 190만원 미만인 노동자를 지원하기로 했다. 과세하지 않는 연장·초과근로수당을 제외한 월보수만 따져서 190만원 미만이면 된다는 것으로 사실상 월보수액 기준이 190만원에서 210만원으로 늘어난 셈이다.

내년 이후 지원 지속될지도 의문

정부가 지난해 최저임금 보완책으로 ‘소상공인·영세 중소기업 지원대책’을 내놓자마자 민간기업 임금을 국민 세금으로 메우는 것이 타당한지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됐다. 그러자 정부는 1년간 한시적으로만 운영하겠다는 답을 내놨다. 하지만 올해 들어 일자리안정자금이 현장에서 외면받는 현상이 확산되자 2019년에도 계속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정부 관계자들이 잇달아 언급하고 있다. 원칙 없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정부 정책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내년에도 최저임금이 인상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부 지원은 지속될지 불확실하다. 사업주들이 선뜻 일자리안정자금 신청에 나서기 어려운 이유다. 그나마 월 13만원인 지원액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 금액은 최저임금 인상분 16.4% 가운데 최근 5년간 평균 인상률 7.4%를 제외한 나머지 9% 인상분을 지원한다는 데서 나온 것이다. 내년 최저임금이 얼마나 오를지에 따라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액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원 절차마저 복잡하다. 4대 사회보험에 가입한 근로자라면 보험 자료를 활용하면 비교적 간단하다. 신규 가입자는 사정이 다르다. 신청서 작성부터 급여대장 제출까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업주들은 “세무사나 노무사에게 문의하면 급여대장(통장) 등 제출서류를 낼 경우 영업실적이나 사업 운영 상황이 고스란히 노출될 가능성이 있으니 아예 신청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있다”고 전한다. 영세 사업주들이 신청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은 이유다. 일자리안정자금은 사업주만 신청할 수 있다 보니 근로자들은 애초 신청 기회조차 없다.

산업 현장에서는 법 위반에 따른 처벌 위험을 무릅쓰고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는 근로자 비율을 뜻하는 최저임금 미만율은 매년 증가해 2016년 적용 대상 근로자 1962만 명의 13.6%인 266만 명에 달했다. 최저임금이 16.4%나 오른 올해는 미만율도 역대 최고 수준일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는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에게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방침을 강조하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고용부는 지난달 8일부터 최저임금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지방노동청에서는 편의점, 음식점 등 취약사업장을 집중 점검하고 있다.

도입 당시부터 일자리안정자금은 실효성과 형평성에서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지원 요건을 완화해 당초 편성된 예산 3조원을 전액 소진해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업주가 자발적으로 임금을 올려줄 유인을 없애고 이 자리를 보조금이 대신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제도개선 논의 필요

저소득 근로자의 소득을 올려주자면 정책수단을 최저임금 하나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근로소득장려세제(EITC)를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눈여겨볼 만하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영세 사업주의 경영난과 그로 인한 일자리 감소 가능성이라는 부작용도 고려했어야 한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노동정책은 손을 놓은 채 홍보에만 열을 올리다 보니 ‘쇼통 행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 등 제도 개선 논의는 노동계 반대에 부딪혀 진전이 없다. 내년 최저임금 심의는 다음달 시작된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벌써 노사의 기싸움이 한창이다. 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측에 편파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노동계로부터 사퇴를 요구받고 있다.

js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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